나의 하루, 2021.06.27 - 미국 돌아온 날
나의 하루, 2021.06.27
미국 돌아온 날
미국 시카고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 국제 공항으로 갔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입국 게이트에서 부모님이랑 헤어질 때 살짝 눈물이 날 뻔 했지만 씩씩하게 들어가서 절차를 밟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아빠가 기다리면서 면세점에서 쇼핑이나 잔뜩하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이 나이 되도록 명품이나 메이커는 관심이 없다. 좋은 건지, 아님 나이에 비해서 살짝 격이 떨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 돈을 못 버는 나로서는 사치 안 부리는 내 자신이 참 다행이다.
비행기를 탔는데 역시 코시국이라서 그런지 내 옆 두 자리는 비었다. 세 좌석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창가 쪽에 보니 아이 셋과 함께 여행하는 엄마가 있었다. 혼자서 어린 아이 세 명을 데리고 13시간 짜리 비행을 하다니... 괜히 어린 시절 오빠랑 나 데리고 비행기 탔던 우리 엄마가 생각 나서 일부러 자리를 비워뒀다.
비행기를 타면 새로 올라온 영화를 전부 다 보겠다는 나의 포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밤에 못 자서 너무 피곤했던 나는 그냥 계속 졸고 엎드려서 잤다. 눈 떠 보니 옆자리 엄마가 잠깐 내 옆에 와서 아이를 하나 어르고 있어서 역시 그 자리 비워두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잠깐 갔을 때 보니까 사람들이 다 좌석 세개에 걸쳐 누워서 꿀잠 자던데, 한 편으로는 부러웠지만 조금이라도 편해질 젊은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이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아이가 보채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자고 싶었는데 그 젊은 엄마가 아이 버릇을 고치려는 건지, 아이를 어르고 달래지도 않고 방치를 했다. 아이가 소리 지르고 보채는데 그냥 본인 짐 정리를 하면서 다른 아이를 챙기더라. 그게 한 5분 지속되자 화가 난 나는 한 마디 할까, 싶었지만 괜히 똥 밟을까봐 참았다. 너무 피곤한 나는 저 엄마가 짐 치우면 바로 세 좌석 걸쳐서 누워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다. 참고로 나는 피곤하면 상상 이상으로 예민해지고 인성이 박살 나는 사람이다. 정신 차리고 나면 내가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제 2의 자아가 나온다.
하튼 젊은 엄마는 본인 자리로 돌아갔고 짐도 치우길래 내가 세 좌석을 전부 차지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편하게 누우면서 들었던 생각이, 지금 배고픈데... 기내식 언제 주지... 하면서 잠들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꿀잠을 잤냐면, 비행기 안에 불이 켜지고 기내식을 나눠주는데 그걸 못 듣고 계속 잤다. 정신 차려보니 좌석에 기내식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나는 바로 기내식을 달라고 부탁해서 먹을 수 있었다. 잠보다는 먹는 게 더 중요한 내가 기내식 냄새도 못 맡고 계속 자다니. 정말 피곤했나 보다. (참고로 나는 개코라서 맛있는 냄새 나면 잠에서 깬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입국 기다리는데 작은 마약탐지견이 총총 거리면서 지나갔다. 근데 갑자기 어떤 승객이 들고 있던 가방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 공항 수색대가 가방을 열어보니 과자가 계속 나와서 탐지견이 너무 귀여웠는데, 나중에 가방 맨 아래에서 과일이 나왔다. 개 교육을 참 잘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도 다 찾고 공항 앞에서 오빠랑 서진 언니를 기다렸다. 근데 그 때 공항 와이파이가 끊겼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무료 와이파이가 45분만 제공된다.) 심지어 핸드폰 유심트레이가 계속 안 열려서 데이터 연결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Payphone도 써보려고 도전 했는데 작동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떤 이상한 한국인 택시 아저씨로 추정 되는 사람이 말 걸면서 도와줄 것처럼 하다가 내가 돈이 안 될 것 같았는지 내가 말하는 도중에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갔다. 참 어이 없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서진 언니가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구출해줬다.
오빠 차에 탄 나는 핸드폰 유심트레이부터 고칠려고 했다. 서진 언니도 시도했는데 안 되길래 오빠가 트레이를 열었다. 언니가 오빠한테 오구 잘했다며 머리 쓰다듬어 주는데 그 순간 수줍게 오빠 얼굴에 미소가 피어서 좀 웃겼다. 오빠 만으로 28살인데 아직 칭찬 듣는 게 좋은 나이인가보다. 하긴, 칭찬 듣기 좋은 나이가 정해져 있진 않지!
Way to Chicago. 시카고 시내가 저 멀리 보인다!
언니오빠가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자고 해서 Niles에 있는 엄청 큰 H-mart를 갔다. 거기서 언니가 짬짜면이랑 탕수육 사줘서 그거 먹고 장을 봤다. 계산하고 나올 때 보니까 호두과자 팔길래 언니가 37개짜리를 샀다. 그리고 파리바게트에 가서 커피랑 빵을 샀는데, 오빠가 커피를 대자로 사왔다. 나는 그냥 작은 거 입가심으로 먹고 싶었는데, 저 멀리서 당당하게 라지 사이즈 커피를 들고 오는 오빠를 보며 미국인 다 됐네, 싶었다. 충격적인 건 나는 배불러 죽을 것 같아서 커피도 1/3정도 겨우 먹었는데 언니랑 오빠는 끊임없이 먹었다. 그 큰 커피를 다 마시고 호두 과자에 떡에... 차 안에서 아주 잔치를 벌였다. 인간의 배 안에 블랙홀이 있는 걸 실제로 목격하게 되었다. 언니는 자꾸 "주형이 먹을래?" 하면서 음식을 권하길래 다 같이 그만 먹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 두 명은 계속 먹었다.
시카고에 있는 언니오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언니오빠가 키우는 만두라는 고양이 때문이다! 만두를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하던 내가 직접 만나게 되다니... 연예인 팬미팅 가는 느낌의 설렘이었다.
맑은 시카고 하늘! 같은 하늘일텐데 한국에서는 이런 하늘 잘 못 본 것 같다.
내가 곧 이사를 가야해서 시카고 West Loop으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Zillow에 올라온 아파트가 있는데 가격이 그나마 싼 것 같아서 거기 갈까 고민 중이라고 얘기했다. Presidential Towers 라고 하니까 언니가 "거기 우리 집이야!" 해서 너무 신기했다. 서진언니네 언니랑 그 분 남편도 그 아파트 산다고 했다. 서진언니가 주형이도 꼭 오라고 했다. 오빠한테 거기 parking fee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270불 정도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비싼 것 같다고 말하자,
오빠: 아니야, 한 달에 270불이면 비싼 것 같은데 하루로 생각하면 하루에 1불도 안 하는 거지.
언니: (옆에서 끄덕끄덕)
나: ???? 한 달에 270이 왜 하루에 1이야?
(다 같이 뇌정지)
나: 하루에 10불도 안 되는 거 아니야?
오빠: 아....?
안쓰럽다. 기본 산수도 불가능한 머리가 되었다. 의학 지식과 수술 관련 지식만 머릿속에 쑤셔넣더니, 270÷30이 1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 오빠 말이 맞다고 옆에서 끄덕거린 서진 언니가 너무 웃겼다. 언니는 승규가 말하는 거라서 맞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와, 우리 오빠를 이렇게 좋아하고 멋있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 신기했다. 참고로 우리 오빠는 원이 360도인 것을 까먹은 전적이 있다. 언니는 본인도 가끔 원이 몇 도인지 헷갈린다고 한 전적이 있다. 웃기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잊을 정도로 의학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넣는 거라고 생각하니 좀 안쓰러웠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로 한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고 몰두한 적이 없을 것이고, 나도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들이 대단하게 보인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하지만 난 무덤 갈 때까지 이걸로 놀릴 것이다. (참고로 오빠가 나한테만 결혼한다는 걸 안 알려줘서 내가 삐쳐있었다. 나중에 나 결혼하면 결혼식 2일 전에 청첩장 보낼 거니까 오든지 말든지 하라고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빠는 본인 결혼 날짜도 까먹고 살고 있었다. 7월 언젠가 라는 것 까지만 알고 정확한 날짜를 모른다. 언니는 그런 걸로 서운해하지도 않고 이해하는 걸 보니 진짜 의대는 공부만 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나보다.)
Presidential Towers는 정말 좋았다. 직장을 어디를 잡든 무조건 여기서 살고 싶다. 오빠랑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산게 초등학교 6학년이 마지막이었다. 오빠는 기숙사 고등학교, 미국 유학 등으로 항상 멀리 살았다. 그 동안 함께 하지 못 했던 시간을 조금이나마 recover하고 싶다.
하튼 집에 도착했더니 만두가 침대 밑에 숨어있었다. 언니는 바로 나에게 claritin을 줘서 다행히 알러지 반응이 심하진 않았다. 만두랑 친해져서 같이 놀고 언니랑 수다 떠는 사이에 오빠는 어느새 침대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한 번 수술 들어가면 10시간 가량 아무것도 못 먹고 서 있어야 해서 시간 조금이라도 날 때 틈틈이 잠을 자고 식량을 몸 속에 비축해둔다고 했다. 우리 오빠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 내가 기억하는 오빠는 아침마다 못 일어나서 엄마한테 등짝 맞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neurosurgeon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만두 모음집. 만두 너무 작고 소중하고 귀엽다!
분명 언니가 크루엘라 보여줬는데 만두한테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못 봤다. 정말 재밌었던 것 기억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봐야할 것 같다😂 오빠도 일어나서 크루엘라 같이 보면서 참외랑 자두를 갖고 왔다. 식량 비축 아찔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한다. 수다 떨면서 놀다가 저녁으로 건물 내에 있는 Five guys를 먹었다. 내 최애 햄버거에 Cajun fries까지! 글 쓰면서 또 먹고 싶다. 이것도 언니가 사줘서 좀 미안했다. 내가 사려고 카드까지 꺼냈는데 언니가 돈 벌면 사라고 해서 조용히 찌그러졌다. 나중에 돈 벌면 언니오빠 진짜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이제 슬슬 내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에반스턴으로 출발했다. 언니오빠가 짐 옮기는 것까지 도와줘서 진짜 고마웠다. 그래서 아마존으로 언니오빠 집으로 오빠 차 핸드폰 거치대를 주문해줬다. 오빠가 갤럭시로 폰을 바꾸면서 전에 쓰던 거치대가 폰을 인식 못 해서 거치대 없이 살고 있었다. 우리 오빠답다. 거치대 살 시간에 차라리 자거나 먹겠지?

이민가방 옮기다가 팔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 (훌쩍)
고마운 일들만 가득한 하루가 지나갔다. 오빠가 요즘 행복해보여서 참 다행이다. 항상 말 없이 묵묵히 본인 일만 하는 일개미 같은 사람이라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궁금했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자부심을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좋다. 서진언니도 오빠한테 엄청 잘해주는 것 같고, 만두도 오빠에게 엄청 큰 위안과 행복이 되는 것 같아서 괜시리 모두에게 고맙다. 나도 언니오빠처럼 예쁜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다! (그래도 의대생은 싫다. 270÷30 할 줄 아는 사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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