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2021.07.26 - 집안일 열심히 한 날

나의 하루, 2021.07.26

집안일 열심히 한 날




오늘은 집안일을 하면서 생각이 많았던 하루다.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평화로워야 한다. 대학원도 무사히 졸업했고, 취직도 잘 됐고, 몸도 건강하니까 첫 출근 전까지 신나게 즐길 일만 남았다. 하지만 머리 속에 당장 해결해야 할 고민이 없다 보니까 먼 미래의 고민을 당겨서 하게 된다. 요즘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너무 생각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과연 좋은 선생님이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말 그대로 지금 걱정해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책 없는 고민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그럴 때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애써 억누르곤 하는데, 요즘은 술 마시고 술에 취해가는 내 모습이 싫어졌다. 기분 좋게 한 잔이 아니라 무언가를 억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술을 마시다 보면 대학교 때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울과 불안을 해소하려던 어린 내가 생각나서 갑자기 환멸이 난다.

지난 주말도 파티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썩 내키지 않던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술에 취하면 최고로 하이텐션을 찍었다가 술이 깨면서 기분이 다운되는 그 기분이 너무 비참하다. 술에 취했다가 정신 차려보니 다시 난 또 혼자인 그런 기분? 신나게 시끌벅적 놀다가 갑자기 쓰나미처럼 모든 게 사라진 것 같아서 속상해지는 기분이다. 친한 친구들이랑 오손도손 술집이나 바에서 노는 게 아니라 큰 파티에서 의미 없는 사람들, 의미 없는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이렇게 현타가 온다.

하지만 난 빨리 회복을 해야했다. 나는 자존감이 원래 높지 않은 사람으로서 성인이 된 후 상당히 잦은 우울증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굉장히 잘 안다. 즐겁지도 않던 파티에서의 현타가 앞으로 남은 내 방학을 망치게 둘 순 없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질 때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게 특효다. 나는 오늘 하루 집안일이나 실컷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Target에 가서 장을 보았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 집에 돌아오니 온 몸에 땀이 나고 진이 빠졌지만 오늘 계획했던 집안일을 못 하고 그냥 침대에 누우면 밤에 얼마나 내 자신을 자책하고 우울해질 지 알기 때문에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macro-friendly mac&cheese가 있는데 생각 의외로 쉼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밖에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대학원 다닐 때 자주 해먹었다. 그 영상에서 배운 방법으로 turkey mac&cheese랑 beef rotini pasta를 만들었다.

일단 샐러리를 다졌다. 샐러리는 파스타든 볶음밥이든 어디에 넣어도 다 맛있다. turkey mac&cheese를 만들고 beef rotini pasta를 만들었는데, 이건 그냥 내 맘대로 매콤하게 레드칠리페퍼 가루 집어놓고 맘대로 만들었다. 의외로 안 느끼하고 맛있었다! 5통으로 소분해서 통에 담아두었다가 하나씩 전자렌지에 간편하게 돌려먹으면 된다. 신기하게 나는 쌀보다 면이랑 빵을 좋아한다. 쌀은 한 번 먹으면 3주 정도는 생각이 안 나는데 파스타 같은 면, 또띠아 같은 빵은 맨날 먹고 싶다. 

왼쪽이 turkey mac&cheese, 오른쪽이 beef rotini pasta.




소분해서 담고 나서 마늘을 다듬었다. 마늘 다듬은 적이 처음인데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미국은 왜 깐마늘이 없을까. 있는데 내가 못 본 걸까...? 마늘에 진심인 한국이 그리웠다.

마늘 다지다가 죽을 뻔 했다. 다음엔 무조건 chopper 사서 편하게 다져야지.




미니 오븐도 청소했다. 밑에 끈적하게 소스가 묻어 있었는데 안 닦고 계속 쓰다보니까 딱딱하게 타서 바닥에 굳어 있었다. 그래서 미니 오븐 사용할 때마다 탄 내가 올라와서 신경이 쓰였었는데, 날을 잡았으니 오늘 다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킹소다로 paste를 만들어서 불려놓고 숟가락으로 박박 긁으니 깨끗해졌다. before랑 after 사진 찍어놓을걸😐


오늘 장 보러 갔을 때 블루베리도 사놨어서 블루베리도 씻어 먹었다. 블루베리에는 좀 웃픈 사연이 있다. 어릴 때 한국은 블루베리가 비싸서 엄마가 특별한 날에만 사주셨다. 하필이면 그 특별한 날이 외고 재학 중이었던 오빠가 한 달에 한 번 기숙사에서 나올 때였다. 오빠는 항상 블루베리를 씹지 않고 진공청소기마냥 흡입했다. (지금도 호두과자 흡입하는 걸 보면 딱히 씹는 게 뭔지 모르는 것 같다.) 하튼 입이 작고 천천히 먹는 나는 한 줌에 4알에서 5알 정도 집고 티비 보면서 히히히 웃다가 더 먹으려고 과일 접시를 보면 블루베리가 전부 다 사라져 있었다. 내가 5알 먹는 사이에 오빠는 블루베리 한 통을 다 먹은 것이다. 억울해서 내가 울면서 짜증내면 "넌 대전 집에 있으니까 엄마가 더 사주실거 아냐~" 하면서 방에 들어갔다. 문제는 엄마는 나만을 위한 블루베리를 절대 사주시지 않았다. 비싸다고 오빠 오는 날에만 사주셨고, 오빠가 항상 그걸 다 먹어서 난 자라면서 블루베리를 많이 먹은 적이 없다. (그래도 냉동 블루베리는 엄마가 자주 사주셨다😂) 그래서 블루베리만 보면 중학교 시절의 열등감투성이의 내가 생각이 나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는 블루베리를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소중하게 한알씩 음미하면서 아껴먹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일에는 consequence가 따른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 받는 누군가가 있는 법이다. 부모님이 절대 의도하시진 않았지만 기숙사 사는 오빠가 딱해서 오빠 올 때마다 밥 더 잘 차려주고 맛있는 걸 사주는 게 나에게는 결핍이 되었고 오빠는 무의식적으로 라이벌이 되었다. 중학교 때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이 '그딴 외고 안 가도 성공해야지' 였다. 뭐, 나름 성공했다. 좋은 대학교 나와서 좋은 대학원 졸업했고, 내가 꿈 꾸던 일을 하면서 1년에 3달씩 방학을 즐기게 되겠지? 그래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도 오빠와 나를 계속 비교하게 된다. 오빠는 벌써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데, 나는 3년 후에 과연 그 자리에 있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오빠 인생은 오빠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늘 계획한 집안일은 다 했다. 내 자신에게 아낌없이 칭찬해줘야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