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2024.07.04 - 책도 읽고 발레도 배우는 근황 (눈물주의)

나의 하루, 2024.07.04


책도 읽고 발레도 배우는 근황 (눈물주의)



3년 만에 돌아온 블로그, 하이! 진짜 오랜만이야. (사실 2023년 1월에 전남친이랑 헤어졌을 때 글을 남겼는데 지금 보니 너무 웃겨서 그냥 포스트 지워버림ㅋㅋㅋㅋ진짜 잘못 되어도 한 참 잘못 된 사람을 사랑했었던 거지...) 그 동안 새로 시도한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아서 가볍게 일기 쓰듯 글 남겨볼까 해서 오랜만에 돌아왔다. 



일단 교사 생활.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1년 차, 그냥 활활 불타는 생지옥이었던 2년 차, 그리고 야단스럽지 않게 흘러간 3년 차. 이번 여름 지나면 4년 차에 접어드는데, 사실 설렘이나 걱정은 크게 없고 그냥 좀 무던해서 내 자신이 신기하다. 내가 첫 해 때 가르쳤던 애들이 이제 senior가 되는데 내가 써야 할 추천서가 넘쳐날 것 같아서 그게 좀 걱정되는 것 빼곤 자신 있다. 신기한 게 확실히 해가 거듭할 수록 점점 애들한테 마음을 쏟는 게 적어지는 것 같다. 1년 차 때는 정말 내 모든 걸 갈아서 애들한테 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많이 사랑하는 정도? 애들도 그걸 아는 건지, 아니면 내가 학생이 주는 사랑에 무관심해진 건지, 애들이 참 예쁘고 교사 생활이 보람 차지만 첫 해 때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정은 아니라서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열정과 사랑을 빼면 그게 무슨 교사겠어. 온 힘을 다해 열정을 붓고 사랑을 할 마음으로 다음 학년을 준비해야지.



작년부터 헬스장을 등록하고 한 달은 빡세게 가다가 운태기 (운동 권태기) 와서 5달 잠적 타고, 갑자기 삘 받아서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로 아령이랑 바벨 중고로 사서 집에서 운동 한 달 하다가 또 운태기가 왔다. (뭔 놈의 운동 권태기가 한 달마다 오냐고...) 이번 여름을 시작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라이프 스타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발레, 수영, 아이스 스케이트, 테니스 등 다양한 강좌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수 해놨다. 그 중에서 이번 여름부터 바로 할 수 있는 게 발레라서 한 달 치 결제했다.

어린 시절 뉴저지에서 살 때 나는 발레, 아이스 스케이트, 수영을 배웠다. 발레는 주중에 한 번씩, 아이스 스케이트는 일요일마다, 수영은 여름방학 동안 다녔다. 발레 다닐 때 파란색 레오타드에 치마를 입고 올빽 똥머리로 다니다가, 나이가 더 들고선 분홍색 레오타드에 분홍색 치마, 그리고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다녔었다. 그 분홍색 스웨터가 랩 형태로 허리 쪽에 묶는 거라서 참 독특해서 그 스웨터를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물 마시려고 정수기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콧물이 계속 나왔다. 어린 나는 콧물을 계속 스웨터 소매에 쓱쓱 닦았는데, 나중에 보니 코피 범벅이었다. 결국 선생님들 오피스에 가서 얼음찜질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집에 돌아갔다. 그 아끼던 분홍색 스웨터 소매에 피가 묻혀진 걸 본 그 장면은 아직도 눈 감으면 떠올려 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러고선 발레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The Fairly OddParents나 스펀지밥을 보면서 goldfish 과자를 먹으며 저녁을 기다렸다.
일요일에는 오빠가 하키를 배우고 난 기본 아이스 스케이트를 배웠는데, 막내의 특성상 난 오빠의 못 생긴 하키화를 물려 받아야 했다. 수업 같이 듣는 여자애들은 하얗고 날씬한 피겨화를 신었는데, 나만 검정색 뚱뚱한 하키화를 신었어야 해서 항상 심술이 났다. 덤으로 얼음 위에서 넘어질 때마다 엉덩이가 젖어서 춥고 아파서 화딱지가 났다. 자유연습 동안에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엄마한테 달려가 징징 거리면 엄마가 아이스 링크장 윗층에 있는 따뜻한 카페로 데려가 핫초코를 사주셨다. 그 카페에서 오빠랑 아빠가 스케이트 타는 걸 구경하면서 핫초코를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여름에는 야외 수영장을 갔는데 오빠랑 나는 정말 많이 탔다. 진짜 수영 고글 모양대로 타서 그 때 사진 보면 그냥 너구리 두 마리다. 수영장에는 항상 Britney Spears나 Avril Lavigne 노래가 흘러 나왔고, 난 그 때부터 Avril Lavigne 노래에 빠져서 맨날 들은 결과, 지금도 가사를 완벽하게 따라 부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작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로 성장시켰다. 그렇게 좋아하던 싸구려 재질의 발레복 스웨터, 그 발레복에 어울리게 헤어젤 잔뜩 발라서 올림머리로 묶어준 엄마의 손길, 얼음에 엉덩이 찧을 때마다 울면서 아빠한테 징징거리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서 나를 들어올리고 링크장 밖 엄마한테로 데려다 준 아빠의 팔, 엄마가 사 준 스티로폼 컵에 담긴 뜨거운 핫초코와 그 위에서 조금씩 녹는 마쉬멜로우. 매 순간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었고 그 기억들 때문에 만사에 지친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기억은 뉴저지 한정이다. 한국에서 내 삶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정말 마음이 지옥이었다. 소중한 친구들 덕분에 견딜 만 했을 뿐이지, 사는 게 즐겁진 않았다.)

하튼 나는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에 발레 배우는 것을 굉장히 기대했다. 유연성에 집중한 수업일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엄청난 코어와 하체근력을 사용해야 했다. 헬스를 할 때와는 다른 근육을 사용해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 첫 수업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아마존으로 저렴한 발레슈즈를 구매했다. 


카즈하가 놓고 간 토슈즈. 내가 챙기마.


발레를 조금이라도 잘 하려면 헬스로 기본적인 근육을 키워놔야 한다는 걸 깨달은 나는 헬스를 조금 더 열심히 가게 되었다. 발레는 질릴 때까지 계속 다닐 예정이다. 가을이나 겨울부터는 수영도 배울 생각이다.




요즘 책을 꾸준히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중인데, 최근에 읽은 책 중 정말 와닿았던 책이 있다. Michelle Zauner의 Crying in H-Mart라는 책인데, 백인-한국인 혼혈인 작가가 한국인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적은 자서전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표현이 서툴었고, 내 딸이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딸의 못난 점들을 꼬집어 해결책을 알려주려 했고, 항상 나의 안 좋은 모습만 지적하는 엄마를 미워하던 딸의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나에게 너무 잘 와닿아서 한 장 한 장을 엉엉 울면서 읽었다.


총 20개의 챕터가 있는데 한 챕터 끝낼 때마다 책을 덮어야 했다.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울어서 가슴이 저렸다.


우리 엄마는 감정 표현이 서툰 경상도 출신인데, 내가 엄마의 투박한 표현에서 사랑을 찾은 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항상 엄마가 오빠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크게 자랑스럽지 않은 딸, 별 볼 일 없는 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엄마가 위로라고 건넸던 말들은 나의 서운함을 불렀고, 그 서운함은 열등감에 불을 붙여 분노를 일으켰다. 결국엔 항상 엄마랑 싸웠고, 엄마가 별 의미 없이 한 말을 비꼬고 싶은 만큼 비꼬아서 화살로 만들어 엄마에게 다시 던지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고, 작가가 느꼈던 감정들이 먼 미래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면 내가 느끼게 될 감정들이라고 생각하니 엄마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엄마랑 다퉈도 '내가 어른이 되었으니 조금 더 어른스럽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자' 라는 생각을 하며 말을 조심히 하려고 한다. 굳이 부정적인 에너지로 우리의 대화를 채울 필요는 없으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너무 슬퍼서 엄마한테 전화했다. 이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니까 엄마가 원래 삶이라는 게 유한한 거라고, 그걸 꼭 알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현재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신 상황인데, 엄마도 요즘 엄마의 엄마가 계속 생각 나고 마음이 아프신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착한 딸이었으니까 후회는 없으시지 않을까? 나는 내가 엄마한테 준 상처 다 만회하려면 우리 엄마 150살 까지는 사셔야 할텐데. 그래야 내가 후회를 안 할 텐데.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내가 엄마아빠 다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른이다. 사실 친가 쪽 어른들, 특히 할아버지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와 절연을 했다. 친가는 유교 사상이 강한데, 장남인 아빠 밑에서 난 장남인 오빠는 할아버지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심지어 그 손자가 공부도 잘해서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성격도 순하니 얼마나 예뻐 보이셨을까. 문제는 그걸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항상 "승규는 잘 지내나?" 입에 달고 사셨고, 내가 어떻게 사는 지는 관심도 없으셨다. 노스웨스턴 대학원 붙었을 때도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어서 잘 됐다'가 아니라, '승규랑 가까워서 오빠 밥이랑 빨래 해 줄 수 있겠다' 라고 입에 다셨다. 
청주에서 학원 강사로 일할 때였다. 늦은 밤 막차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할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내가 오빠 밥이랑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어서 할아버지가 마음이 참 든든하다고 하셨다. 밤 늦게까지 힘들게 일하느라 지쳤던 나는 할아버지와 통화를 끊고 버스에서 펑펑 울면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최근에는 아빠가 할아버지가 수술해야할 지도 모르니 안부 전화를 드리라고 해서 전화를 드렸더니 계속 승규는 잘 지내냐, 수술 전에 검사 할 것들 있는데 여기 의사들이 참 멋있고 대단하다, 승규도 이런 일 할 거라고 생각하니 아주 대견하다 등등. 정작 오빠는 바빠서 연락 못 드리고 있는데 기껏 마음 쓴 나한텐 의대 가서 의사 된 오빠 이야기만 주구장창하셨다. 결국 나도 "할아버지, 저도 교사로서 일 성실히,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니 본인이 원하셨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전화를 바로 끊으셨다. 그 날 나는 두 번 다시는 할아버지한테서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할아버지의 카톡을 차단했다.

그에 반해 외할머니는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셨다. 오빠와 나를 차별하지 않으셨고, 어린 시절에 시장 가시면 항상 머리핀이나 예쁜 꽃무늬 손수건을 사주셨다. 공부로 압박을 전혀 주지 않으셨고, 올바르고 건강하게 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외할머니께서 나를 방에 불러 문을 닫고 크게 혼내신 적이 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너무 버릇 없게 대들어서 할머니가 마음이 아프다고, 본인 딸 괴롭히지 말고 철 좀 들으라고 하셨다. 항상 공부를 기대만큼 못해서 혼났던 나로선 공부가 아닌 다른 이유로 혼났다는 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날 항상 온화하고 다정했던 외할머니께서 날 엄청 무섭게 혼내셨지만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낀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그런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신 지 오래 되었다. 지금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몸으로 하루하루 주사바늘에 의지해 연명하신다. 나는 외할머니께서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외할머니께서 어서 편안함을 찾아 떠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나 한국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살아계셨으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드리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게 그 때까지만이라도 견디셨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든다.


이 포스트를 굉장히 가볍게 시작했는데 의도치 않게 너무 무거워졌다. 요즘 느꼈던 감정들도 적다보니 어두운 내용도 많이 담기게 되었는데, 삶은 유한하다는 엄마의 말씀을 마음 속 새기며 모든 순간들과 감정들을 아끼고 소중히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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