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2024.10.14 - 지긋지긋한 불안증을 잘 헤쳐나가 보자.
나의 하루, 2024.10.14
지긋지긋한 불안증을 잘 헤쳐나가 보자.
정리해야 할 생각도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은데 인스타그램에 계속 올리면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블로그로 후다닥 달려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날씨는 바로 가을 날씨다. 파랗고 높은 하늘, 선선하게 부는 바람, 그 바람에서 나는 특유의 시원한 냄새까지, 난 가을이 제일 좋다. 문제는 가을이 다가오는 때가 개학한 지 한 달에서 한 달 반이 되는 시기라서 번아웃이 굉장히 심하게 온다는 것이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싶어도 당장 눈 앞에 놓여진 수많은 일거리들이 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하고, 이 정도 업무량도 소화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바보 같고 한심해진다. (물론 교사의 업무량은 엄청 나다. 교사가 뭐가 어렵냐고? 너가 해 봐.) 이번에도 역시나 번아웃과 함께 불안증이 왔는데, 하필 소개팅 앱으로 괜찮은 사람을 만난 시기였다. 어휴, 대차게 말아먹었지. 우리가 여름에 만났었더라면 그래도 잘 됐을 것 같은데, 하필 만난 시기가 내가 힘들 때라서 속상한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2년 가까이 있었던 소개팅 앱을 지우고 내 자신에게 전념하기로 다짐했다. 지금 내가 내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니.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걸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계속 생각해봤는데,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였다. 나의 근본적인 불안의 원인은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태생이 불안이라고 생각해. 태어나기를 불안을 디폴트로 안고 태어난 거지. 그래도 그 잠재워진 불안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가을이 올 때마다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 trigger는 체력과 쳇바퀴 도는 듯한 권태라고 생각한다. 체력적으로 지치고, 잠은 충분히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점점 대충 먹게 되고, 더 이상 설레는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이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집에 와서 기니피그 집 청소하고 집안일 좀 하다가 대충 저녁 만들어 먹고 잠에 들고. 주말에는 아이스 스케이트 수업, 발레 수업을 가지만, 행복은 잠시 뿐, 일주일동안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대부분 소요된다. 그러다 멍하니 오버워치 유튜브나 보다가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같은 루틴. 난 그저 보통의 삶을 살고 싶은데,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쉼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집안일이든, 학교 일이든. 돈은 계속 나가고, 시간은 계속 부족하고, 마음에 여유는 계속 사라지고. 수면 위에 떠 있는 오리가 되게 쉽고 편하게 떠 있는 것 같지만 밑에선 끊임 없이 물장구를 치면서 떠 있는 것 처럼. 난 지금 그냥 쉬고 싶은데.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하루만 있어 보고 싶은데. 그 물장구를 멈추면 물 속에 가라앉아 익사를 할 것 같은 것이다.
어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보다 견뎌야 할 책임감이 너무 벅차다. 그래서인지 요즘 잠도 너무 못 자고, 운동할 힘도 없어서 근력 운동 안 한 지 3주 되어가고, 식욕도 사라져서 챙겨간 점심을 반도 못 먹고, 집에 와서는 뭐 먹을 지 모르겠어서 계속 안 먹다가 손이 달달 떨릴 때 쯤에 단백질 쉐이크에 빵 쪼가리 대충 먹고, 온 몸은 경직되어서 목과 어깨는 잔뜩 굳어있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식욕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식욕 빼면 시체인 내가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진 건 진짜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운동 안 했는데 뱃살이 빠진 건 좀 좋다 허허.) 그냥 매사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져서 의도치 않게 Eminem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분노에 불 지피기 좋은 비트와 가사라서 그냥 맞불 작전 느낌으로 들었는데,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이렇게 계속 살고 싶지 않아. 높고 파란 하늘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 그러다가 우연히 Regina Song의 the cutest pair를 듣고 눈물이 펑펑 났다. 가사가 짝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난 짝사랑의 감성도 다 잊을 정도로 연애 세포가 다 죽었다. 그 노래를 듣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내가 잊고 살았던 감정들이 생각났다. 가슴 절절한 이별을 담은 사랑도, 잡힐 듯 안 잡히는 짝사랑도,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편안한 친구의 사랑도, 항상 내 편이라는 확신이 드는 든든한 가족의 사랑도. 난 전부 잊고 있었다. 사랑 빼면 의미가 없는 세상인데, 나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쫓기듯이 살고 있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인데, 그냥 이렇게 무너질 순 없잖아.
그래서 난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기로 다짐했다. 마음이 급할수록 여유롭게 생각하고 웃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정현언니한테 연락해서 이번에 오는 토요일에 만나자고 했는데, 마침 언니가 시간이 된대서 진짜 너무 기뻤다.
그래서 우린 토요일날 천문대에 놀러가서 산책하고 사진 찍기로 했고, 저녁으로 차이나타운 넘어가서 양꼬치를 먹기로 했다. 금요일날에 염색약이 도착해서 어두운 색으로 염색하고 앞머리를 자를 예정인데, 그렇게 새로 바뀐 내 모습을 신나게 기록할 생각에 벌써 설렌다. 물론 원래 머리가 어두워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겠지만, 매 여름마다 강한 햇살에 머리색이 점점 밝아져서 현재 내 머리색이 맘에 안 든다. 남은 잘 못 알아봐도 내 마음에 들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거실에 쓸 러그도 구매했다. 이거는 좀 웃긴 게, 크기, 두께, 색, 디자인 모두 맘에 드는 러그가 없어서 정말 오랫동안 서진언니를 괴롭히며 러그를 골랐다. 카톡 기록 보니까 10월 9일부터 언니를 괴롭혔더라구. 그 와중에 언니가 또 진지하게 잘 봐주니까 계속 의지했는데, 결국 언니 인스타 광고가 전부 러그 광고가 되었다. 제일 어이 없는 건 내가 맨 처음에 고른, 언니가 산 러그를 사서 자르고 쓰기로 결정해서 내가 5일동안 사이트 뒤져가며 이 러그, 저 러그 고른 의미가 전혀 없어졌다. 그래도 재미난 경험이었어.
진짜 류승규가 본인 인생에서 젤 잘 한 것 = 의대 가서 서진언니 만나서 결혼한 것
친오빠보다 새언니랑 더 많이 카톡하고 얘기하는 게 너무 웃기다.
하튼 이렇게 신나게 카톡하고 놀다가 문득 내 몸이 굳어진 게 신경 쓰여서 학생이 선물해 준 배스 밤 풀어서 반신욕했다. 전에는 반신욕 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오늘 확실히 느껴졌다. 내 몸 모든 세포에 따땃한 온기가 돈 것은 정말 오랫만이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신욕하고, 매일 밤 자기 전 스트레칭을 꼭 해줘야겠다.
결론은, 올해 온 가을 불안증을 잘 넘긴 것 같다. 밥 먹는 것만 좀 신경 쓰면 행복한 쿼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이 정도면 큰 무리 없이 잘 견뎠고 잘 버텼다. 이 세상은 마냥 벅차고 힘들기만 한 게 아니야. 잘 돌아보면 행복이 여기저기 있어. 인생을 퀘스트라고 생각하자. 올바른 사람에게 가서 미션을 제대로 수행해야 보상이 오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면 내 마음에 행복이 찾아오고 사랑이 다시 피어날거야.
잘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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