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o's Kabob Chicago
Gao's Kabob Chicago
맛집 후기라고 쓰고 일상 일기라고 읽는다.
2024.10.19 (토) 방문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현언니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정민언니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겨울, 노스웨스턴 대학원 시절이다. 물리학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하필 그 수업이 pre med 애들이랑 듣는 것이었다. 나 혼자 교육학 전공으로서 굉장히 외롭고 걱정이 됐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어서 canvas에 있는 roster 뒤져서 그 여자의 이름이랑 성을 보고 한국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고서 물리학 랩실 때 내가 수줍게 가서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물어본 것이 우리의 우정의 시작이었다. 언니를 알게 된 지 이제 5년 정도 되어가는데, 그 기간 동안 난 정민언니한테 의지도 많이 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어서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정말 착하고 선입견 없이 해맑은 사람이라서 이 험한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줘야하는 사람이다.
언니가 가까운 곳에서 살지만 의대생이기도 하고 내가 소셜에너지가 빨리 방전되어서 항상 집에 박혀있는 탓에 언니의 소식이 뜸했었는데, 언니가 유독 인스타그램에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 되어 토요일에 만나서 이쁘게 꾸며입고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 전환을 하자고 했다. 다행히 스케쥴이 잘 맞아서 우리는 Adler Planetarium 바깥에서 사진 찍고 놀다가 저녁에 양꼬치를 먹기로 했다.
일단 나는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헐레벌떡 염색을 먼저 했다. 이전 포스트에서 말했다시피 머리카락이 햇빛을 많이 받아 갈색이 되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어두운 염색약을 샀다.
차이가 보이시나요? 안 보인다구요? 어오~ 제 눈에는 차이가 잘 보이는 걸요?! 특히 머리 끝쪽이 더 이상 갈색으로 지저분해 보이지 않아서 정말 만족스러운 염색이었다. 서진언니가 앞머리 자르래서 잘랐는데, 오랜만에 앞머리가 생기니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희인이는 자르지 말라고 말렸지만... 미안! 난 답정너였어 희인아!)
그리고 네일도 셀프로 다시 했다. 이전 네일이 할로윈 테마여서 검은색이랑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었는데, 원래 할로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손톱도 많이 자라서 디자인을 새로 했다. 난 원래 차분한 네일을 좋아하는 터라, 차분하면서도 가을 냄새 나는 디자인을 생각하며 네일을 했다. 네일을 셀프로 연장하고 디자인 한지 1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진짜 재밌고 돈도 많이 안 들어서 정말 만족스럽다. 물론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긴 해... (양손 하는데 하루는 비워놔야 함ㅋㅋㅋ 저것도 금요일 밤에 시작해서 토요일 아침에 끝낸 거다.)
가을 역시 최고야. 하나하나 다 마음에 드는 상태이다. 심지어 러그도 도착해서 정민언니 만나러 가기 전에 세팅을 해놨다. (서진언니와 5일 동안 고른 그 러그.) 그 와중에 내 소파가 드럽게 무거워서 소파를 러그 위로 옮기다가 사망할 뻔 했다. 원래 힘으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사람인데 너무 힘들어서 구글에 가구 쉽게 옮기는 법을 검색했을 정도였다. 물론 도움 되는 게 없어서 힘으로 그냥 옮기다가 소파 중간에 있는 조립을 해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막판에는 분리해서 수월하게 옮겼다.
러그가 너무 클 것 같아서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딱 좋은 사이즈 같다. 이젠 한국인답게 바닥에 앉아서 소파를 등받이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 문제는 오른쪽에 보이는 저 리클라이너가 고장이 나서 소파가 닫기지 않는다. 두부랑 무우가 폭신한 러그를 맛보더니 계속 저기 밑에 들어가서 노는데, 똥오줌 싸서 러그 망가질까봐 피기 집 주변에 철장을 쳤다. (기니피그는 좁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그냥 러그 위에서는 똥오줌을 싸진 않겠지만 안전하게 숨어있을 수 있는 곳에서는 배변활동이 활발해진다.) 빨리 저 리클라이너 고쳐야 하는데! 그래야 우리 애들이 다 나와서 러그를 같이 즐길 수 있을텐데!
하튼 할 일 마치고 준비를 해서 언니 집에 갔다. 언니는 아직 준비 중이었는데, 내가 언니 옆머리 세팅 해준다고 까불다가 언니 머리를 더 망쳤다. (언니 내가 미안해... 근데 난 이뻤어... 언닌 항상 나한테 예쁘거든...) 그래서 그냥 얌전히 언니네 강아지 토리랑 놀았다. 토리가 낯을 많이 가리는데 내가 애기 때 토리를 봐준 적이 있어서 그런지 토리는 날 잘 따랐다. 처음 볼 때 진짜 내 발만 했는데, 이제는 좀 커졌다. (그래도 너 몸통이 우리 두부만 해. 너 더 커져야 해 토리야!)
언니 준비 다 하고 나서 Adler Planetarium 쪽으로 우버를 타고 갔다. 언니가 사진을 잘 찍어줘서 고맙고 행복했다! 문제는 난 사진 똥손이라서 언니 사진을 많이 못 찍어줬다. 좀 부끄럽지만 난 남 사진을 잘 못 찍어준다. 난 열심히 찍는데 상대방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 너무 무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그냥 사진 찍는 것에 부담감이 크다. 그래도 더 노력해야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시선으로 사진에 잘 담아내고 싶다.
언니랑 근황토크하다가 내 전남친 이야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전남친이 엄청난 나르시시스트 병신이라는 게 기억이 나서 언니한테 넋두리를 했다. 헤어지고 나서는 그 새끼가 나르시시스트였던 증거들이 너무 명확했는데, 사귀는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관계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을 전부 스스로를 탓했다. 그렇게 남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새끼들은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하는데, 나를 치켜세우는 듯한 말들로 사랑을 표현하거나 기분을 좋게 만들다가, 한 순간에 논리적인 척, 진리를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나를 바닥으로 내팽겨친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이 만들어 놓는다. 나는 나름 남자도 많이 만나보고 스스로를 똑똑하다 생각했는데, 전남친은 나를 아주 갖고 놀았다. 그래도 그 경험 덕분에 나르시시스트는 기가 막히게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소개팅 나가도 나르시시스트 낌새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난 바로 자리를 떠날 정도로 나는 더 이상 나의 가치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려는 사람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다.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정리해봤다.
1. 친구가 없다. 본인이 구축해놓은 완벽한 세상을 망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2. 모든 게 남탓이다. 본인은 절대 잘못할 수 없고 틀릴 수 없는 사람이다. 무엇인가가 잘못 되면 그것은 본인이 아닌 남의 탓. 연애를 하면 양보하면서 타협을 해야하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만 계속 양보하고 속 타는 상황이 된다.
3. 본인이 굉장히 잘난 줄 안다.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본인이 굉장히 잘생겼다고 생각하거나 본인이 엄청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난 전남친한테서 들은 말 중 가장 어이 없었던 게 바로 본인이 우리 커플 중 비주얼 담당이라고 한 것. Dude, you look like a naked mole rat.
4. 상대방의 조건을 굉장히 따진다. 본인은 가진 게 쥐뿔도 없으면서 나의 조건을 본인의 조건인 것마냥 광고를 한다. 전남친이 지인들한테 나를 소개할 때 This is Michelle, who went to Northwestern 이라고 소개했다. 왜 내 학력이 니 스펙이 되는 건데?
5. 허언, 사기를 친다.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 자산을 밝힌다거나(물론 구라), 사는 동네를 속인다거나, 본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법규를 무시한다. 본인은 남들보다 잘났기 때문에 교통법규 어겨도 되고, 남들보다 대단하기 때문에 법보다 본인이 위라고 생각한다.
위 다섯 가지가 대표적인 특징들인데, 여기서 큰 문제는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인건데 피해자가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왜 나는 아무것도 못 알아봤을까, 이렇게 red flag가 많았는데 왜 난 계속 그 관계에 머물렀을까, 나는 왜 이렇게 순진하고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었을까. 시간이 많이 지나고서야 깨달은 것은 난 아무 잘못이 없었다는 것이고 자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말로 교묘하게 사람 감정을 흔들어 놓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이용한 사람이 잘못된 거지, 나의 잘못은 없었다는 것.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본 건데, infj들이 가스라이팅에 특히 취약하다고 한다. 공감을 잘 해주고, 내가 불편한 것보다 남이 불편한 게 더 싫은 사람이라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최고의 타겟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꼭 사람의 전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정환경이 너무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외동이거나 누나가 있는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거른다. 외동이거나 누나 있는 남동생인 애들은 어릴 때부터 본인이 갖고 싶은 건 무조건 갖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양보, 희생, 결핍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는 여동생이 있는 장남인데, 우리 오빠가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오빠는 소나무다. 그냥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저기 멀리 있는 들판에 나가서 뛰어놀다가 지칠 때쯤 뒤돌아보면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며 날 지켜보는 느낌이다. 물론 지금 오빠는 엄청 바빠서 서로 연락을 많이 안 하지만, 오빠는 항상 내 마음 속의 지지대로 남아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무슨 짓을 당해도 오빠한테 돌아가서 털어놓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내 미래 남친/남편은 나와 결이 비슷한, 듬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분명 맛집 후기인데 엿같은 놈 때문에 포스트가 본의 아니게 나르시시스트 관련 포스트가 되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저녁으로 차이나타운에 있는 Gao's Kabob Chicago에 갔다. 정민언니가 더 이상 차가 없어서 내가 운전해서 갔는데, 기분이 신선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에반스턴에서 언니가 항상 늦은 밤에 수업 끝나고 날 태워줬었는데. 이제는 내가 언니한테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주차를 하고 식당에 가니 우리 옆테이블에 한국인 남녀가 있었다. 시카고에서 한국인 만나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데, 괜히 반가웠다. 소개팅 앱으로 약 6번의 소개팅을 나가본 사람으로서 난 그 사람들이 첫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첫 데이트를 꼬치집으로 왔지? 예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닌데, 신기한 선택이다.
우리는 통마늘 막창, beef tongue, chicken skin, 양꼬치, 부추, 그리고 비빔냉면 같아보이는 국수를 시켰다. 진짜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맛있었다. 그 동안 우울증과 불안증 때문에 식욕이 없었는데,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오는 맛이었다. 정현언니는 마라탕을 엄청 먹고 싶어했지만, sold out이라서 다음에 먹기로 했다. 저 비빔냉면인 듯 비빔국수 같은 애는 새콤달콤해서 국물이 계속 들어갔고, 면도 쫄깃한 게 불지도 않아서 식감이 완벽했다.
그 와중에 난 꼬치로 백종원 성대모사를 했다. 백종원의 디테일은 젓가락에 있다. 일반인들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젓가락을 평범하게 내려놓지만, 백종원은 젓가락을 헐레벌떡(?) 내려놓고 팔을 가슴팍에 꼬면서 한 손을 얼굴 쪽에 말면서 와따 재밌네 를 연발한다. 그러고선 이거 뭐예유? 하면서 추가질문을 한다. 그걸 정민언니한테 보여줬더니 언니가 웃고선 나보고 소유진 닮았다고 했다. 백종원 성대모사를 하는데 왜 소유진이 보이는 건데... (전에 소유진 닮았다는 말 여러 번 들었는데, 소유진은 예쁘기 때문에 난 좋다 히힣!)
정민언니가 마라탕 못 먹은 걸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우리는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지면 Happy Lamb가서 hot pot 먹고 시간 더 지나서 꼬치 쿨타임 돌 때 쯤에 이 집 다시 와서 마라탕을 먹기로 했다. 그 와중에 언니가 쿨타임 도는 게 뭔지 몰라서 설명해줬다. 생각해보니 게임 안 하면 쿨타임이라는 말을 들을 일이 없구나. 어찌되든 간에 언니를 자주 보는 건 좋다. 마라탕, 핫 팟,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면서 언니를 계속 만나고 싶다.
신나게 먹는데 옆자리 남녀가 계산을 하려는데 남자가 본인이 낼테니 venmo로 반 보내달라고 여자한테 말했다. 소개팅이 잘 안 되었구나. 남 일 같지 않아서 웃펐다. (여담이지만 소개팅 앱으로 만난 남자가 있었는데 이 남자도 나한테 더치페이를 요구했다. 나도 어차피 맘에 안 들어서 별 생각 없이 반 내고 집에 왔는데 애프터 신청이 와 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웃겨서 너무 맘에 들었단다. 그러면 밥을 너가 사고 내가 우버 타고 집 가는 걸 보고 갔어야지, 너 먼저 홀랑 우버 타고 집에 가면 어떡하니 임마. 아, 참고로 얘 누나 있는 애였음. 절레절레.)
우리는 kungfu tea 가서 버블티 주문하고 언니 집에 돌아갔다. 언니 아파트에 있는 덱에 나가서 야경 구경하고, 귀여운 토리 바깥바람도 쐬게 했다. 언니 아파트 시설이 너무 좋았는데, 가장 좋은 건 무료인 gym이었다. 보니 사람도 거의 없고 너무 잘 되어 있었는데, 다음에 언니랑 같이 가서 운동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에 언니 집 놀러와서 같이 할 일 하기로 했다. 언니랑 달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달이 계속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물론 달은 쉼없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 게 신기했다.
주차시간이 다 되어서 슬슬 가려고 하는데 언니가 farmer's market에서 산 유칼립투스를 선물로 줬다. 정민언니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난 정말 좋아하는데, 언니가 주는 선물은 항상 언니의 세심함과 센스가 돋보인다. 언니랑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하루였다! 사진도 많이 찍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꼬치도 많이 먹고, 식욕도 돌아오고,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은 날이었다. 나한테 너무 소중한 정민언니도 혼자서 끙끙 앓지 않고 나에게 기댈 수 있게 내가 더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맛집 평가 (별 5개 만점)
- Gao's Kabob Chicago: ⭐⭐⭐⭐⭐
- 👍 Beef tongue이 엄청 부드럽고 야들야들했다. Chicken skin은 뿌셔뿌셔 양념맛이 났는데, 맥주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 👍 양꼬치는 그냥 평범했다! 한국 양꼬치보다 훨씬 작았고 양념이 달라서 맛이 다르지만 맛있었다.
- 👍 비빔냉면 같은 국수 핵존맛.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익숙한 맛.
- 👎 언니가 먹다가 작은 철수세미를 발견했는데, 어디서 나온 건지는 잘 모른다. 솔직히 난 크게 신경 안 쓰는 성격인데, 이런 거 예민한 사람은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 꼭 부추 시켜!!! 안 그러면 너무 느끼하고 기름지다.
- 다음에 오면 마라탕 먹고 한국 마라탕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하고 싶다!
- 집에 오니 방귀냄새가 엄청 독했다. 음식에 지방이 많아서 그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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