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2024.11.21-24: New York

여행기록, 2024.11.21 - 24: New York

혼자일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잖아!



 1일 차

올해 땡스기빙 연휴를 오빠와 서진언니와 보내기 위해 땡스기빙 연휴 이틀 전에 연차를 내고 뉴욕으로 향했다. 작년에는 매디랑 키라 라는 친구들과 갔는데, 사실 성향이 잘 안 맞아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후에는 그냥 혼자 여행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언니오빠는 병원 일 때문에 바빠서 같이 못 노니까 혼자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야겠다, 여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해야겠다,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역시 나 같은 예민보스, 파워내향인은 그냥 스스로가 최고의 친구인 듯 하다. 근데 친한 친구들은 다 내가 대문자 E인 줄 안다. 역시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다른가 봐!)

 9시 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도 추적추적 오고, 전 날에 동료쌤들이랑 저녁 먹고 늦게까지 짐 싸고, 새벽에 일어나서 비행기 타느라 몸이 너무 피곤했다. 첫 날에는 Met 미술관 가서 여유롭게 혼자 구경하고 올려고 했는데,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그냥 언니오빠 집에서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언니오빠 집에 갔다.

오빠한테서 비번을 받고 문을 여니 만두가 나를 반겼다. 만두가 애기였을 때는 세상 순하고 애교가 많았는데, 성묘가 되고 나니 싸갈쓰가 바갈쓰가 되었다. 고양이 알러지가 심하니까 알러지약 빠르게 먹어주고 최대한 심기 안 건드리고 조용하게 짐을 풀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만두랑 사진 찍기 성공!

저 해골 장식 뒤에 있는 그림 내가 언니오빠 그려준 건데, 그걸 거실에 예쁘게 전시해놔서 너무 고마웠다. 3년 전에 그린 건데, 맘에 들었나? ㅎㅎ그 와중에 해골 장식 너무 신경외과 류승규다워서 웃김. 누가 저걸 거실에 장식해놓냐고, 할로윈도 아닌데.



비도 오고 피곤한데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작년에 오프인 오빠랑 거실에서 맥주 마시면서 중국 면요리 먹은 게 생각나서 그걸 먹으러 갔다. Xian’s Famous Food라는 곳인데, 맵고 자극적이고 쫀득한 면 좋아하는 나와 오빠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작년에 거실에서 무한도전 보면서 먹고 있는데, 음식을 빨리 먹는 오빠가 천천히 먹는 나를 보면서, “넌 누가 밑에서 면을 계속 밀어올려주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건 결국엔 달라는 뜻이거든. 먹고 있던 면을 끊고 체념한 표정으로 오빠한테 내 그릇을 주니까 히히 하면서 내 면을 퍼갔다. 오빠가 내 음식을 잘 안 뺏어먹는데, 면요리는 오빠가 눈이 뒤집어진다. 어설프게 음식 방어했다가는 팔 물어뜯길 수도 있음ㅋㅋ 오죽하면 신경외과 은퇴하면 국수집 차린다 했을까. 근데 국수집 차려도 망할 듯? 지가 다 먹어서.



우산이 없어서 후드를 뒤집어 쓰고 터덜터덜 밥을 사러 갔다. 가는 길에 공차에 들러서 버블티 사고, 드럭스토어 가서 머리에 바르는 컬링젤 사고, 중국음식을 사고 집에 돌아왔다. 근데 집에 돌아오니까 내가 면허증을 잃어버린 걸 알게 됐다. 지갑이 너무 커서 카드 두 개랑 면허증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녔는데, 핸드폰 꺼내면서 어디에 흘린 것 같다. 그래도 state ID 있으니까 천만다행이었지. 비행기 못 탈 뻔..

그 와중에 류승규 기억력 무슨 일이야? 작년에 같이 먹으면서 우와악 존맛하면서 내가 오두방정 떠는 걸 개한심하게 보더니 그걸 그 새 잊음?



야무지게 조지는 먹방. 너무 맛있었엉.




하튼 야무지게 먹방 한 편 때려주고, 집에서 낮잠 한 숨 자고 나니 언니가 퇴근했다. 언니랑 만나자마자 우린 동네 아줌마 수다 모드가 되어서 별의 별 헛소리를 다하면서 야무지게 떠들었다. 근데 언니가 요즘 공포게임 유튜브를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 나는 공포게임, 공포영화 하나도 못 봐서 그걸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사람이 여깄었넹.. 그래도 생각보다는 재밌고 스릴 있어서 괜찮았다. (사실 틀어놓고 난 아이패드로 요리중독 게임 했다.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무서운 거 잘 보는 척 하는 내가 좀 허언증 같고 웃기다.)




언니랑 같이 수다 떨고 저녁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에 언니가 오프라서 언니 피검사, 미용실을 같이 가주고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오빠는 당직이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을 하면 하루 종일 잘 것 같으니 우리끼리 놀고 저녁을 오빠랑 같이 셋이서 먹기로 하고 잠들었다. 





2일 차

아.. 아침에 일어나게 된 이유가 알람도 아니고, 신체 시계 때문도 아니고, 류승규 목소리 때문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기상이었다. 거실 소파에서 잤는데, 만두 자동배식기가 거실에 있다. 근데 오빠가 음성 설정을 해놔서 만두 사료가 나오면서 “만두야~ 밥 먹자!”가 두 번 나온다. 근데 그거 알지? 기계로 녹음해놓은 사람 목소리 진짜 기괴하게 들리는 거. 나 진짜 너무 놀래서 소리 지르면서 일어났어ㅋㅋㅋㅠㅠ

덕분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언니가 일어나기 전에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하니 언니가 일어났다. 언니랑 같이 놀 생각에 기분 좋아진 나는 히히 거리면서 언니 옆에서 알짱대고 있었는데 언니가 피곤한 얼굴로 “넌 원래 아침부터 이렇게 에너지 넘쳐?” 라고 물었다. “아니? 근데 언니랑 있으니까 기분 좋아!” 하니까 언니가 체념한 얼굴로 화장을 했다. 


나갈 채비를 마친 우리는 언니의 피검사와 미용실 예약을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 바로 앞에 내가 전 날에 간 공차가 있어서 내가 후다닥 공차로 뛰어들어가서 면허증 혹시 봤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해서 그냥 나오고 전철역에 카드를 찍으려는데 너무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 류승규다!”를 크게 외쳤다. 마치 전설 속의 포켓몬을 마주친 느낌.. 전 날에 당직 서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엄청 피곤해보였다. 


그 와중에 언니랑 오빠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렸는데 유미한테서 이런 디엠을 받았다. 나겠냐고..




오빠를 만나자마자 눈이 하트가 된 새언니를 보면서 으.. 싶었지만 그래도 둘이 행복하다니 다행이다. 오빠한테 우리의 일정을 알려주니까 오빠가 “나도 Met 가고 싶은뎅..” 하면서 귀여운 척하며 언니를 쳐다보는데 기분이 나빴다. “서진이 너 왜 내가 가자고 할 땐 안 가고 주형이랑 가.. 나도 갈래..” 하는데 오? 서진언니에게 나는 좀 특별한 걸지도? 싶어서 기분이 바로 좋아지긴 했다. 언니가 안 된다고, 너 지금 좀비니까 집에 가서 자라고 하는데도 류승규가 지도 간다고 고집 피워서 결국 각자 할 일 하고 돌아와서 같이 미술관 가기로 했다. 우리는 피검사, 미용실, 쇼핑하고 오빠는 그 사이에 자기로 했다. 각자의 할 일을 정한 후 나와 서진언니는 전철로 들어갔다.


이전 포스트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엠비티아이가 INFJ이다. J가 많이 높은 탓에 모든 상황을 미리 예상해보고 거기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 과정을 즐기는 게 절대 아니다. 나도 가끔 이렇게 복잡하게 계획을 5가지씩 세우는 내가 싫다. 근데 미리 생각 안 해두면 내 마음이 너무 불안해..) 반면에 서진언니는 전형적인 P이다. 내가 전 날 밤에 “우리 몇 시에 나가서 몇 시까지 피검사 마치고 몇 시까지 미용실 가서 근처에서 가볍게 밥 먹고 미술관 가면 될 것 같아! 지금은 내가 먹는 거 찾아보는 거 귀찮으니까 내일 언니 미용실에서 머리 자를 때 알아볼게. 저녁에 오빠랑 같이 밥 먹으니까 점심으로는 가볍게 카페에서 커피랑 샌드위치 먹고 돌아다니면 되겠다!” 얘기했는데 언니가 “그 많은 생각을 방금 한 거야?” 라고 했다. 내가 “응!” 하니까 언니가 편안한 얼굴로 “난 그냥 너 따라갈게!” 라고 하는데 그게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강력한 J로서 같이 지내기 편한 사람은 나랑 같은 J가 아니라 고분고분하게 생각 없이 잘 따라오는 P라는 걸 느꼈다. (물론 언니는 책임감 있는 P라서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생각 없이 다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두루뭉실한 계획은 스스로 세우고 지키는데 가는 길 찾는 거나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는 게 내 몫이라서 큰 부담은 없었다.)




전철을 타고 언니 피검사 받는 거 기다리면서 카페 몇 개 알아놓고, 언니한테 링크 보내서 언니가 카페를 정했다. 그러고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이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한국 미용실 같은 분위기가 났다. 언니가 미용실 치고 저렴한 편이라고 했는데, 난 미국에서 미용실을 한 번도 안 가봐서 신기했다. 그 와중에 일본인 미용사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백인 아저씨가 언니 담당이라고 했다. 근데 아저씨가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팔뚝이 언니 얼굴만 했다. 불곰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 근육으로 언니의 머리를 섬세하기 감겨주는데 반전매력이었다.

그 와중에 금붕어 한 마리 추가요.. 미국 병원들은 왜 이렇게 레지던트들을 금붕어로 만들어 놓는건가..




언니 머리 커트 기다리는데 미용실 댕댕이가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내 옆자리로 깡총 뛰어왔다. 사람이 많아서 스트레스 받았나? 내 옆에 와서 내 손 냄새를 맡더니 내가 머리를 살살 만져주니까 눈을 사르르 감는 게 너무 귀여웠다. 미용실 원장으로 추정되는 분이 혹시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냐고 물어보길래 아마 언니네 고양이 만두 냄새를 맡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게 다른 동물 냄새 맡고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더 귀엽잖아! 아무래도 작은 강아지들이 성격이 조금 더 예민한 경향이 있어서 더 이상 안 만지고 핸드폰하면서 곁눈질로 훔쳐보니까 편안해하면서 내 옆에 자리 잡다가 누가 저 멀리서 간식을 들고 나타나니까 나를 버리고 갔다. 역시 먹을 거 앞에서는 장사 없어.. 그래도 내 옆에 잠깐이라도 와줘서 고마워!






언니 머리 다 하고 나니 너무 배고파서 바로 카페에 가서 커피랑 샌드위치를 시켰다. 우리가 간 곳은 Macchiato 라는 곳이었는데, 간단하게 라떼 마시고 허기 채우기 좋았다. 창가 자리에서 신나게 셀카도 찍고 언니랑 수다 떠는데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우리가 있는 창문으로 오더니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리고 갔다. 순간 어? 우리가 악귀 같았나? 싶어서 언니를 쓱 봤는데 둘 다 빵 터져서 한 참을 웃었다ㅋㅋㅋㅋㅋ어떤 미친놈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한테 십자가 그리면서 시비 거냐고ㅜㅜㅋㅋㅋㅋㅋ


우리 언니 존예야. 진짜 아이돌 왜 안 하나 몰라.




그러고선 언니랑 같이 위치공유를 했다. 정민 언니도 위치 공유를 하고, 서진 언니랑도 위치 공유를 하니까 기분이 좋았어!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뭘하는지 관심 가지고 궁금해 했으면 좋겠거든. 그냥 선택적 관종이지 뭐ㅎㅎ 하튼 신나게 사진 찍고 놀다가 쇼핑을 하러 다녔다. 나는 무지를 진짜 좋아하는데,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물건들이 너무 좋다. 난 원래 필기구를 많이 샀는데 내가 아이패드를 산 이후로 필기구 욕심이 사라져서 주방 용품이랑 청소 용품을 샀다. 예쁘고 심플한 그릇도 사고, 주방 후라이팬 뒤집개도 사고, 욕실 타일에 쓸 수 있는 청소솔도 사고!


슬슬 기력이 떨어져서 집에 가서 오빠 깨우고 Met 갈 준비를 했다. 오빠가 일어나는 걸 힘들어 하길래 내가 “님 놓고 우리끼리 간다~” 이러니까 화장실로 바로 가더라. 근데 샤워한다면서 물소리는 안 들리고 그냥 유튜브 소리만 나길래 변기통 위에서 잠들었나 싶었는데, 언니가 승규는 똥 싼다면서 안 나온다고, 그냥 냅두면 언젠가는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 나중에 결혼하면 남자가 화장실에 오래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냅둬~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가봐.”하는데 세상에.. 마더 테레사세요? 뭔 아량이 이렇게 넓어? 근데 생각해보니 우리 아빠도 맨날 그랬다. 샤워한다면서 화장실 들어가서는 오만년 지나도록 안 나오는 거. 남자들의 man cave 같은 건가? 나중에 엄마아빠한테 이 이야기하니까 아빠가 “결국엔 다 아빠를 닮는 법이다” 하시는 게 웃겼다. 


드디어 Met을 가게 되었다. Met 가는 길에 오빠랑 언니가 병원 이야기 하길래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는데, 둘 다 언성이 조금 높아져서 난 반사적으로 “으..” 하면서 이어폰을 꼽고 언니오빠 앞으로 가서 눈치를 봤다. 언니가 날 보더니 “우리 싸우는 거 아니야. 우리 그냥 이야기하는 중이야.” 했는데 내가 “그래도 싸우지마..”하니까 오빠가 언니한테 “우리 trauma response야. 나랑 주형이는 맨날 엄마아빠가 큰 목소리로 싸워서 큰 소리 들리면 좀 움찔해. 근데 주형아, 너도 이건 좀 고쳐야해. 큰 소리 난다고 피하고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라고 했다. 역시 류승규가 날 제일 잘 알아. 난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갈등 상황 싫어하지만 꼴에 고집은 더럽게 쎄서 굉장히 특이한 성격인 것 같다. 싸울 때는 싸우지만 웬만해서는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됐는데, 가끔은 그게 속을 갉아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최대한 다 맞춰주고 싶고 양보해주고 싶으니까. 근데 건강한 disagreement는 더 단단하고 깊은 관계를 만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에 연애하게 되면 회피 성향도 좀 고치고, 내 의견을 조금 더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Met에 들어갔는데 내가 기억한 것보다 훨씬 커서 당황스러웠다. 사람도 너무 많아서 기력이 쫙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언니오빠랑 좀 다니다가 귀찮아서 우리 그냥 각자 다니다가 만나자, 하고 혼자 돌아다녔다. 




사랑의 신, 에로스! 조만간 나에게도 사랑이 오길!













신나게 Met에서 놀다가 미술관 안에 있는 기프트샵 갔는데 너무 귀여운 티팟 세트가 있었다. 동료 쌤 중 Pam이랑 나는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못 마셔서 항상 차를 마시는데, 우리 둘 다 번갈아 가면서 다양한 차를 가져온다. 맛있는 차를 발견하면 서로 호들갑 떨면서 같이 맛 보는 우리 둘만의 루틴이 생겼달까ㅋㅋㅋ하튼 그 티팟 세트를 보니까 Pam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갖고 나오는데 문득 Pam이 선물을 부담스러워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딱 연말에 선물을 해주는 거라 Pam이 본인도 내 선물을 사야 한다고 생각할까봐, 아님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불편할까봐 신경이 쓰였다. (결국 Pam에게 선물하는 날 내가 우물쭈물 거리면서 “너를 위해 선물을 샀는데 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걱정이 된다, 이건 정말 문득 내가 길 가다가 너 생각이 나서 산 거니까 연말 선물이라 생각하지 말고,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 없이 기쁜 맘으로 받아줄 수 있냐” 하니까 Pam이 엄청 감동 받았었다ㅎㅎ그 날 저녁에 Pam이 문자로 내가 사 준 티팟 세트로 차 마시는 사진을 보내줬는데 진짜 행복했어!)



미술관에서 나와서 지하철을 타려는데 연착이 너무 심하게 됐다. 기력 다 방전되어서 빨리 눕고 싶었던 나는 눈에 생기와 초점이 사라졌다. 비도 추적추적 와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연착이 20분 정도 돼서 내가 “이 정도면 집에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 라고 했는데 오빠가 가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인스타에서 본 짤이 생각났는데, 요즘 우리가 더 이상 skip하면서 뛰지 않는다고, 사실 에너지 효율로 따지면 skip해서 뛰어가는 것만큼 빠르고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내가 “비 뚫고 skip해서 갈까?” 하니까 오빠가 제발 해달래ㅋㅋㅋ30블럭을 그렇게 뛰면 총 30분 정도 걸리고, 지금으로부터 30분만에 지하철이 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진지하게 갈까 생각하던 참에 지하철이 왔다ㅋㅋㅋ그 때 만약 뛰어갔으면 빗 속을 뚫고 아시안 여자가 룰루랄라 뛰어댕긴다고 분명 영상이 찍혔을 거다ㅋㅋㅋ

귀여운 언니오빠

 



드디어 집에 와서 좀 누워있다가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Flushing에 있는 수원갈비 라는 곳인데, 거기서 밥 한 공기에 냉면까지 먹었다. 너무 맛있었어!


진짜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



이모님이 나 잘 먹는다고 엄청 예뻐해주심ㅋㅋㅋㅋ젊은 애가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복덩이 같다고 하셨다. 전 그냥 돼지예요 호호! 집에 가서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



3일 차

그 놈의 “만두야~밥 먹자!”를 듣고 일어났다. 언니랑 오빠가 잠들어 있길래 나 혼자 나갈 준비를 하니까 오빠가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 혼자서 High Line 가서 산책하고 점심에 같이 Joe’s Shanghai 가서 샤오롱바오 먹자니까 알겠다고, 먼저 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High Line은 처음 가봤는데, 설렁설렁 산책하면서 돌아다니기 좋았다! 바람이 어엄청 불어서 좀 힘들었던 것만 빼면ㅎㅎ


귀염뽀짝!


1시 반까지 Joe’s Shanghai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언니오빠가 늦게 준비해서 2시까지 만나기로 했다. Joe’s Shanghai는 내가 2016년에 화은 언니랑 미국 여행 할 때 알게 된 곳인데, 내 인생 만두 집이다. 안에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를 파는데, 내가 화은 언니랑 여행할 때 파워 J인 내가 다음 날 일정을 변경하고 다시 가서 샤오롱바오를 시켜 먹었을 정도로 너무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그 이후로 뉴욕 갈 때마다 꼭 들러서 샤오롱바오를 먹곤 했다.

일찍 도착한 나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언니오빠를 기다렸다. 전 날에 언니와 위치공유를 했어서 언니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언니가 맨하튼에서 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언니한테 캡쳐해서 사진 보내고 왜 멈춰있냐고 하니까 언니가 ‘아, 들켰네‘ 하면서 사실 지하철이 지연돼서 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2시 20분에 언니오빠는 도착했고, 나는 거의 50분동안 옆에 있는 중국식 빵집에서 처량하게 기다렸다. 언니오빠가 헐레벌떡 지나치는 모습을 본 나는 주인 만난 강아지 마냥 빵집에서 후다닥 나가서 언니오빠를 만났다.


무슨 캐비지 피클 머시기. 맛있었어.

아름다운 샤오롱바오! 맛은 crab이랑 pork가 있는데 크랩이 더 맛있음.

깐풍새우 같은 거! 한국인들은 많이 먹어본 맛.

오빠가 시킨 머시기 면인데 다 먹고 나서 사진을 찍어버림ㅋㅋㅋ정신 차려 보니까 사진 찍는 거 까먹음.

언니가 나 너무 행복해 보인대서ㅋㅋㅋ지금 보니까 진짜 눈이 반짝거리네..


차이나타운까지 먼 길을 와 준 언니오빠한테 고맙기도 하고, 그 동안 많이 얻어먹어서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현금만 가능해서 좀 당황했다ㅋㅋㅋ다행히 내 지갑에 딱 맞는 금액이 있었는데 오빠가 걱정 말라고, 자기가 보태주겠다고 3달러를 줬다. 고마워서 눈물 날 뻔 했어, 미친놈아..




차이나타운 근처에 걸어서  Soho랑 Little Italy 쪽에 쇼핑하고 놀기로 했다. 돌아다니다가 혼자 있고 싶어서 언니오빠한테 나중에 만나자고 하고 혼자 돌아다녔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이더라도 난 혼자 있는 시간 필요해..) 딱히 맘에 드는 건 없어서 엄청 돌아다니기만 하고 산 거는 거의 없었다. 


오빠가 닮았대. 많이 먹어서 그런가. 

나중에 언니오빠를 만났는데 언니가 너 표정 너무 안 좋대서 카메라로 확인하니까 저 표정이었음ㅋㅋㅋ샤오롱바오 먹을 때랑 너무 다르잖아.. 속으로는 웃겨서 사진 찍은 건데 겉으로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아서 더 어이없어.



류주형의 내향인 본성이 나오는 걸 느낀 언니오빠는 서둘러서 쇼핑을 마무리하고 집에 날 데려다 줬다. 집에 도착해서 신발 딱 벗는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에너지가 생기고 춤도 추고 웃으면서 까불었더니 오빠가 한숨 쉬면서 “너가 에너지 생기면 내가 기력이 딸려. 조용!”이라고 했다. ㅎ어쩌라구ㅎ


이 날 저녁 만두가 내 다리에 앉아줬다. 너무 영광이야! 근데 만두 뒤에 오빠 엉덩이 굉장히 야무지네. 차고 싶게 생겼당ㅎ




4일차

4일차 아침은 교회 가는 걸로 시작했다. 서진언니가 크리스천이어서 오빠가 언니랑 연애할 때 언니 따라 교회를 종종 갔다고 한다. 우리 집은 완전 무교이고, 아빠가 크리스천을 많이 안 좋아하시고 유교 사상을 따르기 때문에 오빠와 나는 어릴 때 동네에 있는 대덕교회 잠깐 친구 따라 다닌 것 말고는 교회에 연이 없었다. 그런 내가 작년 여름쯤에 교회를 다녔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진짜 인생에서 너무 큰 사건이 있었던 때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녔다.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너무 절박하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니까 나도 모르게 믿지도 않는 신한테 기대고 싶었다. 살면서 한 번도 다른 존재에 의존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잘 해결되고 안정을 되찾은 후 그 때를 생각해보니 혼자 가슴앓이하고 힘들어 했던 게 너무 불쌍해서 눈물도 나고 그러네.. 하튼 그 때 정민언니 따라 서버브에 있는 한인교회를 잠깐 다녔는데, 오래 못 다녔어! 거기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순박한 게 느껴져서 같이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또 남에게 줬는지가 뼈저리게 느껴져서 자괴감이 너무 컸거든. 


그런 내가 교회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설교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신을 믿진 않지만, 그래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고, 판단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그 말들이 나에게는 많은 희망을 준다. 작년에 땡스기빙 연휴에 뉴욕 갔을 때 언니오빠랑 Elixir church를 갔는데, 한인교회인데 영어로 모든 걸 진행해서 설교가 더 담백하게 들렸다. 그 때 설교가 너무 와닿아서 예배 끝나고 화장실 가서 훌쩍훌쩍 울었을 정도로 내가 큰 감동을 받았었기 때문에 올해에 가는 것도 큰 기대를 안고 좋은 마음으로 갔다.


올해 설교는 정말 별로였다.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님의 자녀로 쓰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돈 쓰는 지혜를 설교를 해야 할 정도로 이 사람들이 돈이 그렇게 많아? (오빠가 그렇대.) 설교하는 사람은 또 왜 이렇게  narcissistic해? (내가 말했지? Narcissist는 귀신 같이 본다는 거.) 결국엔 지가 돈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본인이 생각하기엔 별로 안 좋은 동네에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 우리 언니랑 오빠가 사는 동네인디요?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거부감 들어서 설교 중간에 나오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설교 끝나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너무 별로였어! 하면서 나오는데 갈색 후드집업을 입은 내 취향인 남자애가 있었다. 서진언니한테 얘기했더니 언니가 개별로래. 언니 남편이 더 별로야.



끝나고 우리는 토속촌이라는 한식당을 가서 순대볶음이랑 내장탕을 먹었다. 근데 거기 연근조림이 지이인짜 맛있었어! 쫀득한 연근조림. 아름다워. 순대볶음은 뭔가 닭강정 소스? 떡볶이 소스? 같은 소스였는데 괜찮았다. 알바생이 엄청 친절해서 좋았어.





그러고 나서 후식으로 Sundaes Best라는 아이스크림 집을 갔는데, 나는 수박화채 맛이랑 매실 맛을 골랐다. 다음에는 매실만 먹자. 수박화채 너무 달고 안 수박이었어.

휴지를 너무 정갈하게 잡았는디?


그러고 나서 푸드코트에 있는 인생네컷에 가서 언니오빠랑 사진 찍었다! 좋은 추억 +1.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주형이 생일선물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케이크였다! 사실 나 뉴욕 도착했을 때 오빠가 좀 있으면 생일이니까 뭐 사줄까? 했는데 내가 케이크 갖고 싶다 했거든. 사실 케이크를 먹고 싶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챙김을 받았다는 그 증거가 좋은 거라서.. 너무 비싼 선물은 괜히 마음 불편해서 못 받겠더라구.




역시 우리 오빠. 동생이 몇 살인 지도 모르고 초를 큰 거 3개 받아왔네. 뭐하는 인간일까? 올해 만 28세 되는건데, 강제 30세 축하 당했다. 고맙다! 



좀 놀고 웃고 떠들다 보니 시카고 갈 시간이 다 되어서 언니오빠가 라과디아 공항에 날 데려다줬다. 시카고에 밤 11시 쯤 도착해서 집에 와서 푹 쉬었다. 가장 마음이 편해서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집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 있던데, 나의 집이 되어준 오빠와 서진언니, 정말 고마워! 


(마침 이 때쯤 빅뱅이 Home Sweet Home으로 마마 컴백했다. 온 세상이 나를 축하해주고 사랑해주는 게 틀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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